방송계, 찬란함 속 어두움 - 1부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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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고가 있었던 후로부터 8년이 지났다. 내 가수활동이 댄스에 치중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주위 예상보다 심각했던 다리부상은 가수활동은 커녕 일상생활마저 보장하지 못하게 했다. 몇 번의 걸친 대수술과 십수번의 작은 수술들. 그래도 쉽게 회복되지 않은 다리에 독일까지 넘어가 유명 의사에게 맡겨져 2년이라는 긴 시간을 수술과 재활로만 보내버렸다.

그 한 번의 사고가 내 삶의 많은 부분을 빼앗아갔다. 한창 주가가 오르던 시절, 갑작스런 활동 중지는 엄청난 타격이었다. 한두달만 TV에 나오지 않아도 쉽게 잊혀지는 연예인이라는 직업인데, 2년의 공백은 너무나도 긴 시간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기대반 무서움반, 마음을 갖고 몇날며칠을 거리에 돌아다녔지만, 저를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수많은 인기스타에서, 그저 평범한 여자로. 미칠듯한 공허함이 가득 몰려왔었다.

계약 만료가 한참 지난 소속사에서 못다챙긴 짐을 챙기고, 부모님께는 새로운 생활을 알아보겠다며 원룸을 구했다. 하지만 생활은 어느정도 예상했던 것처럼 순탄치 못했다. 잊혀진 연예인들이 느끼는 허무함을 깨달았다. 마약, 대마초, 도박 같은 것에 빠지는 이유도 알 수 있었다. 그만큼 과거를 잊어버릴만큼 강한 것이 필요했다. 나에게 그 중독제는 바로 술이었다.

중졸 출신의 여자에게 남는 자리는 변변치 못한 아르바이트 자리밖에 없다는 걸 실감하고나서부터 일주일에 한두병씩 친한 친구를 불러 마시던 술이, 원룸에서 혼자 마시는 술로, 그리고 하루하루를 알콜에 의지하는 생활로 변해갔다.







"알콜 중독입니다."



전화도 문자도 받지 않던 내가 걱정된 부모님은 기어코 원룸에 찾아와 내 꼴을 보고 말았다. 잔뜩 술냄새를 풍기며 뻗어있던 나를 간신히 씻기고 데려간 곳은 병원이었다.



"엄청나게 심각한 상황은 아니구요. 한 일이주 입원하신 뒤에 한두달 정도 통원치료 하시고, 처방하는 약 드시면 금세 나아질겁니다."



혼내지도 않고, 다그치지도 않고, 이유도 묻지 않는 부모님. 그저 입술만 깨물고 굵은 눈물을 흘리던 엄마. 사고 이후 그 수많은 수술과 재활치료 와중에도 무덤덤하게 나를 지켜보기만 하던 아빠가 난생 처음 보인 눈물. 그때 결심했다. 무조건 일어서기로.







고등학교 검정고시부터 공부하기 시작했다. 연습생 생활을 하기 전에 어느정도 공부는 했던지라 큰 무리 없이 한 번에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쉴 새도 없이 수능공부에 들어갔다. 3년은 최소한 잡고간다는 생각이었지만, 뜻밖의 행운이었을까 아니면 그만큼 독기를 품었던 것일까. 2년만에 성취한 만족할 만한 성적으로, 비록 SKY는 아니지만 바로 밑급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간에 있었던 고통을 다 없애주리라 기대했던 행복한 캠퍼스 생활은 예상과는 살짝씩 어긋낫다. 제 이름을 말하면 몇몇 사람들이 알아보고 캠퍼스 내에 소문이 돌 것이라는 것은 어느정도 생각은 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삐딱했다.



"쟤 무슨 연예인 특차 쓰고 온 거 아니야?"

"저년 저번에 총회자리 그냥 빼던데, 지 연예인이었다고 저러는거야? 웃긴다."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사소한 일들, 사소한 실수마저 나한테는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었다. 아직도 사고 후의 어떤 트라우마가 있었던 것일까. 사람들이 뒤에서 내 이야기를 할수록 나는 점점 더 학교생활에서 겉돌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생활도 익숙해졌다. 최고 인기 신인이었던 자리에서 잊혀진 연예인으로 떨어지고 난 뒤, 사람들 발 밑에 매장당했던 것만 같았던 그 공허하고 답답했던 기분은, 그래도 많은 사람들 속에서 생활하다보니 한결 나아졌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지수, 예빈, 승지, 그리고 승준 오빠도. 일상적인 삶에서 소소하게 기쁨을 찾을 수 있게 된 나 자신이 대견스러웠고 고마웠다.







그리고 현재, 졸업반. 길 것만 같았던 캠퍼스 생활이 마지막 학기만을 남겨두고 있다.



"어 하늘아, 왔어?"



의자에서 가볍게 웃는 승준 오빠. 다리 부상 이후에 옆에서 돈도 안받고 1년여간을 매니저 역할로 내 재기를 위해 힘써준 정말이지 고마운 오빠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와서 보자고 한 거에요?"



한때 가수생활을 하던 시절, 자주왔던 소속사앞 커피집. 인테리어랑 외관만 살짝 바뀌고 친절한 주인 아주머니나 부드러운 분위기는 그대로다.



"미안해.. 여기서 보자고 해서, 그.. 너가 들었으면 하는게 있어서.. 어 승지야. 여기."



승준 오빠가 승지라고 부른 여자가 자리에 앉는다. 승지는 내가 활동하던 시절 라이벌 구도였던 걸그룹의 일원이었지만, 역시 내 부상사건 이후로 유명 독일 의사까지 소개하며 많은 방면으로 도움을 준, 지금은 꽤나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살짝 승준 오빠 옆에 바싹 붙어앉는 승지가 신경쓰이긴 하지만, 뭐 그래도.. 승준 오빠가 이젠 승지 매니저니까.



"다 있었네. 야, 장하늘 너는 어떻게 연예인보다 이쁘냐?"



승지의 말에 슬쩍 입꼬리를 올린다.



"무슨 이야기 하려고 하는데?"



승지는 백에서 열장남짓 되어보이는 서류를 꺼내더니 맞은편의 제앞으로 돌려놓는다.



"읽어봐. 이번에 오디션 프로그램 하나 하는데 거기 방송작가 일이 하나 필요할 것 같애서, 내가 말 좀 했어. S대 국문학과, 이쁜 초짜 작가 한 번 기회좀 주라고."



갑작스레 나온 승지의 말에 얼떨떨한 기분으로 멍하니 잠깐 서류와 승지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다. 왠지 모르게 떨리는 손으로 서류를 넘겨본다.



"너 방송 경험 있으니까, 환경도 익숙할거고, 잘할 것 같기도 해서. 어때, 마음에 들어?"

승준 오빠하고 승지가 살짝 내 눈치를 본다. 아마, 그 트라우마가 다시 도지지는 않을런지 걱정하는 눈빛이다. 하지만 숨이 가빠지고 긴장된 손가락으로 넘기던 서류 맨 마지막에 있는 계약 조건과 부대사항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사인란에 숨을 크게 들이쉬고나서는 맞은편에 있던 승지를 와락 껴안았다.



"... 고마워! 나.. 다시 방송 일.. 해보고 싶었어.. 승지야.. 진짜, 진짜 고마워.."



정말 새출발이다. 새출발이기에 앞서 또, 내가 몸담그고 자신있어하고, 정말이지 원하고 원했던 방송계다. 처음부터 다시 정상까지 쌓아올라갈거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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