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어디로 - 8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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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나쁜 꿈이었다.

김지연이라는 그 여자.

처음 보는 얼굴인데도 인상이 너무나 또렷하게 남는다.

아주 옛날부터 알고 있었던 것 처럼.

정말일까?

그녀가 혜승이 죽기전에 한 해 전에 자살했던 그 여자일까?

어쩌면 꿈이 아닐런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녀는 왜 내 앞에 나타난 걸까?

게다가 나에게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걸까?

2011년 10월 31일이 2013년 8월9일의 과거는 아니라구?

그리고 2013년 8월9일이 2011년 10월 31일의 미래는 아니라구?

2011년은 내가 아는 과거가 아니고 2013년은 내가 아는 미래가 아니라구?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오랫만에 가보는 캠퍼스.

기분이 새로웠다.

그렇게 지겨웠던 대형강의실 교양수업도

북적대는 카페테리아의 긴 줄도

나에게는 모두 새로웠다.

그렇게도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곳인데

다시 돌아온 지금은 일분일초가 소중했다.

인간은 미래를 모르기때문에 노력한다고 했다.

하지만 미래를 알 수 없기때문에 노력을 포기하기도 한다.

나는 미래를 알고 있기 때문에 노력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형 오늘 한칼하는데?”

저녁스터디가 끝난 후 후배녀석이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으면서 말한다.

“뭐가…”

“솔직히 말해 이제까지 스터디할때 형 몸만 여기 있었지 맘은 딴데 가 있었잖아.”

“칭찬하자는거냐 욕하자는거냐.”

난 캔커피를 따면서 말했다.

“내가 놀라서 그러우.”

“예전의 서승준은 잊어라. 위대한 서승준의 재탄생이다.”

난 커피를 들이켰다.

“자 공부파러가자. 공부.”

난 후배의 등을 두드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냥 의자에 앉아 시간만 때우던 예전의 스터디 시간.

내가 생각해도 2년만에 돌아온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후배가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희영은 매일 저녁 전화를 했다.

전철에서 내려 자취방까지 걸어가는 동안

그녀와 나누는 대화는 더 없이 달콤했다.

행복이란게 이런 걸까?

정말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던 기분.

월요일부터 시작된 나의 2011년의 첫 일주일은

그렇게 쏜 살 같이 지나갔다.



“승준이 너 일주일 못 본 사이에 좀 달라진것 같다.”

희영이 운전을 하면서 힐끗 쳐다 본다.

“살좀 붙지 않았어?”

“응 갑자기 몸이 좀 불은 것 같네.”

당연했다. 2년사이에 10킬로그램이 불었으니까.

“밤늦게까지 스터디하면서 야식을 했더니 금방 살이 찌더라구.”

“공부도 좋지만 몸관리도 해야하지 않겠어?”

“응 그래서 슬슬 빼려고.”

가을날, 언제나 그렇듯이 춘천으로 향하는 길은 차들이 빼곡했다.

“이상한 느낌이야. 겨우 일주일 못만났는데 정말 오랫만에 만난 것 같아.”

희영이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나도 그래. 왜일까?”

난 시트에 몸을 묻고 차창을 바라봤다.

“그냥 몸만 불은게 아냐. 분위기도 전과 너무 달라.”

희영은 핸들을 돌리며 말했다.

“말로 설명은 못하겠는데… 승준이 너 일주일동안 무슨 일이라도 있었니?”

무슨 일있었냐고?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

하지만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냥 웃었다.

“문득 이제까지 내가 뭐하고 살았나 싶더라구. 이제부터 정신차려야지 싶어서.”

희영은 빙그레 웃었다.

“뭐야.. 오늘 너 좀 멋있는 것 같다.”



미래가 일주일만에 바뀌기 시작했다.

2년전 우리는 밀리는 고속도로위에서 겨우겨우 춘천에 도착해서

점심시간도 한참 지났는데 닭갈비집을 찾는 답시고 시내를 빙빙돌며

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춘천에 다다르지도 않았는데도

경춘가도에서 내려와 한 러브호텔에 차를 대고 있는 중이었다.

혜승의 말대로 희영은 침대위에서 소극적이었다.

내가 뭔가를 해달라고 하면 마지 못해 움직이기는 해도

그녀 자신이 적극적으로 즐기는 타입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침대에 엎드려 엉덩이를 들고 있는 그녀를 뒤에서 안았다.

그녀는 이제까지 들어 본 적없는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앞 뒤로 움직였다.

난 두 손으로 그녀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거칠게 허리를 움직이며

내 앞에 엎드려 있는 희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2013년 한 스테이크하우스에서 마주쳤던 그녀가 생각났다.

그녀와 민지가 나누었던 대화가 머리에 떠올랐다.

‘걔랑 보냈던 대학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정말. 그 따위 남자랑…”

그 따위 남자라고 그랬지?

두번 다시 그 따위 말, 입에서 나오지않게 해 주겠어.

이제부터 보게 되겠지만 나 서승준, 그 때의 서승준이 아니거든.

나는 허리를 전에 없이 격렬하게 움직였고

희영은 얼굴을 베개에 묻고는 거의 울음에 가까운 신음소리를 낸다.



우리는 침대 위에 널부러져 있었다.

난 희영의 유방을 쥐고 천천히 쓰다듬었다.

“너 그거 아니?”

희영이 밑도 끝도 없이 물었다.

“뭐를?”

그녀는 유방을 내 손에 맡긴 채 내 어깨를 쓰다듬고 있었다.

“너 나만 보면 주눅들어있었던거…”

기억이 났다. 그랬었다. 나보다 2년이나 앞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희영에게

난 언제나 신세를 지고 있었고

그럴 때마다 난 뭐라 말하기 힘든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랬었지.”

“나 그거 참 싫었다.”

희영은 유방을 쥐고 있던 내 손을 치우더니 품안에 안겨왔다.

“그런데 오늘 처음인것 같애. 이렇게 당당한 승준이 본거.”

난 오른손으로 그녀의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아까도 얘기했잖아. 내가 뭐하고 살았나 싶었다고.”

희영이 키스를 해 왔다.

난 희영의 손을 잡아 내 아랫도리로 가져갔다.

빳빳하게 서 있는 네 페니스를 희영이 부드럽게 감싸쥐었다.

난 몸을 일으켜 희영의 유방을 빨기 시작했다.

희영의 호흡이 다시 가빠지기 시작한다.



나와 희영이 포개어져 있는 침대 위에선

내 엉덩이가 움직일 때마다 젖은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뭘하러 춘천에 가려했는지 잊어버렸다.

경춘가도의 가을 풍경따위도 관심이 없었다.

‘멍청하고 능력없는 하류인생. 그래도 그때는 그게 착한 건 줄 알았지.’

그날 희영이 내뱉었던 또 다른 말이 생각났다.

“아아아아아아”

희영이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난 한 손으로는 희영의 허리를 붙잡고 다른 한손으로는 그녀의 오른 손을 잡고

거칠게 허리를 돌렸다.

‘프러포즈를 받고나서야 깨달았어. 이런 남자랑 함께 했다가는 내 인생도 끝이라고.’

나는 그날 그녀가 내뱉은 말들을 하나 하나 머리에 떠올렸다.

“아 승준아 그만… 그만…그만…”

희영이 몸을 떨며 다리를 감아왔다.

하지만 그녀의 엑스터시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난 허리를 움직였다.



열어놓은 호텔창문 밖으로 호수의 수면이 보였다.

그 수면위로 가을풍경이 반사되고 있었다.

난 창밖을 바라보면서 허리를 움직였다.

침대위에선 희영이 흐느끼면서 내 몸을 받아내고 있었다.



차가 밀리기전에 서울로 돌아오고 싶었다.

그래서 예정보다 일찍 차를 돌렸다.

돌아오는 길은 내가 운전을 했다.

희영은 조수석에서 잠이 들어 있었다.

난 라디오를 끄고 아이폰을 AUX단자에 연결했다.

2011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2013년의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이상한 감각이다.

그 때 왼쪽 사이드미러에 속도를 높히며 다가오는 차 한대가 보였다.

추월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난 속도를 조금 줄였다.

뒤에서 오던 차는 조금씩 조금씩 내 차를 앞질러가기 시작한다.

그 차와의 거리를 확인하기 위해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난 보고 말았다.

그 차의 오른쪽 조수석에 앉은 그녀를.

손혜승이었다.

헤어스타일도 다르고 화장도 달랐지만 난 알 수 있었다.

틀림없이 혜승이었다.

혜승은 약간 뒤로 제낀 시트에 몸을 묻은 채 앞을 보고 있었다.

혜승을 태운 차는 점점 속도를 높히더니 내 차를 추월해 지나간다.

아우디였다.

난 반사적으로 혜승을 태운 차의 번호를 외웠다.

그걸로 뭘 어떻게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그래야 할 것 같았다.

혜승을 태운 차는 점점 속도를 높히면서 내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일주일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다.

손혜승이라는 존재를.

2011년으로 돌아오기 직전까지 난 그녀와 함께 있었다.

그리고 2011년에 와서 처음 마주친 사람 역시 살아있는 그녀였다.

그런데 나는 그녀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게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2011년이라는 시간 속의 나의 세계엔

손혜승이라는 여자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그녀가 다시 나타났다.

지금도 2011년의 나의 세계이건만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손혜승이라는 여자가 나의 세계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꿈속에서 김지연이라는 여자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2011년은 내가 아는 과거가 아니고 2013년은 내가 아는 미래가 아니라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지만

뭔가 어렴풋이 알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여기 어디야?”

잠에서 깬 희영이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구리 다 왔어.”

“아.. 가는 길은 멀어도 오는 길은 가깝네.”

희영은 기지개를 켰다.

난 고개를 오른 쪽으로 돌려 희영의 얼굴을 봤다.

그녀는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2013년의 내가 기억하고 있던 그녀의 표정 대부분은

무표정하거나 굳어있는 얼굴이었다.

유일하게 그녀의 웃는 얼굴을 본 것이 그녀의 결혼식때였다.

그녀의 미소를 다시 볼 기회가 이렇게 다시 돌아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뭔 노래야? 첨 듣는 노래인데?”

그녀는 내 아이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쓸어올리며 말했다.

나는 아차 싶었지만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이런 그룹도 있었나?”

“요즘 나오는 아이돌 그룹이 한 둘이어야 말이지.”

“정말 이름도 모르는 애들이 널렸다.”

희영은 웃으면서 내 아이폰을 계속 만지작거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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