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어디로 - 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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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동안 인형옷 입고 땀 뻘뻘 흘려 번 돈이 5만원이었다.

스타벅스에서 한 시간 일해도 그 곳에서 커피 한 잔 못 사먹는다고 그러듯이

그 날 내가 번 돈으로는 희영과 민지가 먹은 스테이크 값을 내기도 버거웠다.

그걸 벌자고 하루 종일 그 곳에서 그러고 있었다.

그러고선 한 마디 들었다.

하류인생.

희영의 말이 귓전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래 그렇게 사는게 하류인생일런지도 모른다.

그 인생을 너에게도 권했으니 싫었겠지.

정말 미안하다.

난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저녁이 되어 봉천동 언덕길을 걸어 올라왔다.

저 앞에 내가 사는 원룸 빌딩이 보였다.

난 근처의 편의점에서 맥주와 먹거리를 샀다.



“이게 웬일이래?”

혜승이 문앞에서 나를 맞다가 내 양손에 들린 먹거리를 보더니 깜짝 놀란다.

“돈 벌어 뭐하니.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난 혜승에게 맥주가 든 비닐봉투를 내 밀었다.



“나야 먹는거라면 절대 사절을 안하지만 말이야…”

혜승이 테이블에 먹거리를 늘어놓으며 말했다.

“그래도 더운 날에 털옷입고 벌어 온 돈을 입에 다 털어 넣으려니 좀 미안한데.”

“너가 무슨 내 마누라냐. 신경쓰지 말고 먹어.”

혜승은 감자칩 봉투를 펼친 후 육포도 잘게 찢었다.

난 차갑게 식은 맥주캔을 뜯어서 혜승에게 건넸다.

그런 나를 혜승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서승준, 너 오늘 무슨 일 있었구나?”

“서승준이라니… 너 스물한살이라며. 나 스물 여덟이다. 오빠라 불러.”

“내가 살아있으면 그리 불러주겠는데 저승세계에선 내가 선배잖아. 그러니 쌤먹자.”

“선배는 무슨…”

“그건 그렇고 무슨 일이야?”

“일은 무슨…”

“나, 명색에 귀신이다. “

그렇다. 귀신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생전부터 촉이 좋았는지

혜승은 내 기분을 귀신같이 알아맞추는 재주가 있었다.



“오늘 아르바이트하던데서 주희영 봤어.”

혜승은 육포를 찢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혹시 그런 일이 아닌가 싶었다.”

“어떻게 알았는데?”

“표정이 전에 없이 시무룩하니깐…”

혜승이 육포 조각을 내 입에 넣어 주었다.

“너가 그런 표정지을 일이 그 여자 밖에 더 있겠나 싶어서…”

“너 정말 귀신이구나.”

“나 귀신이라니깐. 새삼스럽게.”

혜승이 장난스럽게 흘겨 본다.



“어떻게 살어, 그 여자? 너 걷어찬거 후회하고 살고 있디?”

“걔는 나 못봤어. 나 인형옷 입고 있었으니까.”

“너가 듣고 있는 줄도 모르고 심한 얘기라도 하디?”

난 대꾸하지 못했다.

“안 봐도 비디오다. 자 술이나 푸자.”

혜승이 맥주캔을 들어올렸다.

난 혜승과 가볍게 건배를 하고 맥주를 벌컥 벌컥 들이켰다.



“너, 나 어떻게 생각해?”

난 혜승에게 물었다.

“물주.”

“그거 말고, 작년 7월부터 쭈욱 나 봐왔을 거 아냐. 어떤 남자인 것 같냐구.”

“덜떨어진 남자.”

난 한숨을 내 쉬었다.

“나.. 심각하거든. 좀 진지하게 대답해 줄래?”

“글쎄,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는거야?”

“내가 뭐가 문제인지 알고 싶어서.”

혜승은 대답은 하지않고 삐죽 입을 내민채 나를 봤다.



“주희영이 내 얘기 하고 있더라구. 하류인생이라더라.”

혜승은 맥주캔을 테이블 위에 내려 놓았다.

“당연히 하류인생이지. 이런 후진 원룸에서 꼬지게 사는데.”

혜승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녀는 맥주캔을 만지작 거리며 이리 저리 돌려 본다.

“하지만정상적인 대한민국의 20대 남자들의 삶은 다 하류인생 아닌가?”

혜승의 말투는 여전히 담담했다.

“20대인 주제에 상류인생을 사는게 더 이상한거 아니냐구?”

그녀는 날 바라보았다.

“됐다.. 애써 날 위로할 필요 없어.”

“위로하려고 하는 얘기가 아냐.”

갑자기 혜승의 말투에 힘이 들어갔다.

“내가 그랬거든. 이 나이에 그 상류인생이라는 거 살고 싶어서 날 팔았었거든.”

그녀는 묘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그 결과가 자살이고.”



“뭔 일이 있었던거니?”

난 혜승에게 물었다.

“내가 왜 봉천동에 원룸 얻었는지 알아?”

“왜?”

“여기도 강남이니까.”

“여기가 무슨…”

“이렇게 해서라도 한강 남쪽으로 오고 싶었거든.”

난 혜승을 쳐다 보았다.

“속물이지?”

난 말없이 혜승을 계속 쳐다 보았다.



“나, 아나운서 되고 싶었다.”

혜승은 버릇처럼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그 일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게 상류인생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었거든.”

“그래서 아나운서학원도 열심히 다니고, 그 놈의 네트워크라는 것 만들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이번엔 내가 육포를 찢어서 혜승에게 내밀었다.

“노현정처럼 재벌가는 아니더라도 있는 집 남자 잡고 싶었어.”

난 혜승의 말을 들으며 천천히 맥주를 마셨다.

“뭐하러 돈없다고 징징거리고 살어? 돈많은 남자 만나면 되는데.”

헤승도 맥주를 들이킨다.

“학교에 정말 멋진 선배가 하나 있었다. 아우디 타고 다니는…”

“이런…”

난 황급히 티슈를 한 장 뽑아 혜승에게 내 밀었다.

그녀답지 않게 눈물을 그렁거리고 있는게 아닌가.

혜승은 티슈를 받아 들었지만 눈물을 훔치지 않았다.

“내가 그 선배 잡으려고 했던 짓들을 너가 봤으면 날 정말 경멸했을거야.”

한승연을 닮은 두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 선배가 날 가지고 노는 걸 알면서도 못떠났지.”

난 티슈를 한장 더 뽑아서 흘러내리는 혜승의 눈물을 훔쳤다.

“그는 내가 원하던 모든 걸 가지고 있었거든.”

혜승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이었다.

“승준이가 가진 문제가 뭐냐고 물었지?”

“응.”

“넌 꿈이 없었어.”

“꿈?

“하류인생이 뭐가 나빠. 꿈 없이 사는 게 정말 쪽팔린 일이지.”

“꿈이라…”

내가 꾸었던 꿈은 대기업에 들어가서 희영이와 결혼하는 것이었다.

그것 외에는 다른 꿈… 같은 건 없었다.

“나도 꿈이 없었거든. 아나운서되서 시집이나 잘가자. 이딴 건 꿈도 아니지.”

“그럼 뭐가 제대로 된 꿈인데?”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너나 내가 가지고 있던게 꿈이 아니라는 건 확실해.”

그런가 내가 꿈이 없는 남자였나?



어느새 맥주를 여러 캔 마셨다.

약간의 취기가 돌았다.

난 침대에 등을 기대어 앉았다.

혜승은 두 눈을 감고 내 옆에 앉아 있었다.

아까 언덕길을 올라 올때의 풍경이 머릿 속에 떠 올랐다.

대충 지어진 5층짜리 콘크리트 빌딩.

너무 익숙해서 이제는 지겨워진 풍경.

그런데 그 풍경이 오늘은 뭔가 다르게 보였다.

뭐가 달랐던걸까?

그것은 불이었다.

5층에 있는 내 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언제나 불이 꺼져 있던 그 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퇴근해서 집에 갈때마다 언제나 불이 켜져 있었다.

귀신인 혜승에게 전깃불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을텐데

혜승은 내가 돌아올 때 즈음엔 언제나 불을 켜 두었다.

어둠 속에서 고독한 시간을 보냈던 그녀만이 아는

나를 위한 작은 배려.

문득 가슴 속이 뭉클해져왔다.



낮에 희영의 얼굴을 마주했을 때는

그녀의 입에서 내 이름을 들었을 때는

죽을 것 처럼 고통스러웠다.

혼자였으면 지금도 숨이 막혔으리라.

혜승이 없었으면 오늘 하루도 정말 무거웠으리라.



혜승은 여전히 두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그런 혜승을 나도 모르게 뒤에서 끌어안았다.

혜승은 멈칫했지만 이내 힘을 풀었다.

난 혜승의 목덜미에 키스를 했다.

감촉은 부드러웠지만 따뜻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피부는 맑고 투명했지만 아무런 향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 상관 없었다.



혜승은 뒤로 기대며 나에게 몸을 맡겨 왔다.

난 혜승의 등뒤에 있는 지퍼를 내렸다.

점 하나 없는 비현실적으로 새하얀 등이 드러난다.

혜승의 손이 내 어깨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의 원피스가 흘러내리고

보기좋게 솟아오른 그녀의 유방이 드러났다.

난 혜승의 두 유방 사이로 얼굴을묻었다.

귓가로 가냘픈 혜승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난 불을 껐다.

창가로 들어오는 달빛에 혜승의 벗은 몸을 푸르스름하게 빛났다.

나의 벗은 몸이 올라오자 혜승이 두 다리를 열었다.

내가 혜승의 몸속으로 들어가자 그녀는 신음소리를 냈다.

차가웠다. 그녀의 몸속은 차가웠다.

난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혜승의 하얀 엉덩이가 내 허리를 따라 함께 움직였다.

허리를 더 세게 밀어넣을 때마다

그리 크지않은 혜승의 유방이 흔들리는게 보였다.

혜승의 숨소리가 점점 더 가빠져 온다.

나 역시 거친 숨소리를 토해냈다.



잠시후 팽팽하던 연줄이 끊어지듯 혜승의 몸이 무너져 내린다.

그런 그녀의 엉덩이를 쥐고 난 허리를 더 거칠게 움직였다.

이윽고 눈 앞에 환해지며 나의 모든 움직임이 멈추었다.

한번, 두번, 세번.

나는 그녀의 몸 안에 내 자신을 쏟아 내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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